귀농하며 새로 지은 예천 141.47㎡(42.79평) 복층 경량 목조주택
2014-03-27

귀농하며 새로 지은 
예천 141.47㎡(42.79평) 
복층 경량 목조주택
 
고향이란 단어에는 그리움과 아련함이 묻어 있다. 그래서일까. 고향을 떠올리는 사람들 표정에선 애잔한 향수가 느껴진다. 건축주 전석한(48) 씨도 넉넉한 삶을 뒤로하고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늘 그리워하던 고향으로 귀농을 결심했다. 그리고 현재 모든 게 풍족하다고 느낀다. 추위가 잠시 주춤하던 날 일행은 경북 예천군 상리면 두성리 새별마을로 아내 김은숙(47) 씨와 남매와 함께 촌부村夫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전석한 씨를 찾아 그 삶을 들여다보았다.
 
글·사진 백홍기 기자

건축정보
·위     치: 경북 예천군 상리면 두성리 새별마을
·지역지구: 계획관리지역
·대지면적: 559.00㎡(169.09평)
·건축형태: 복층 경량 목조주택
·연 면 적: 141.47㎡(42.79평) / 용적률: 25.3%
1층: 92.95㎡(28.11평), 
2층: 29.52㎡(8.92평)
창고: 19.00㎡(5.74평)
·지 붕 재: 이중 그림자 아스팔트 슁글
·외 장 재: 시멘트 사이딩
·내 장 재: 루버, 벽지
·바 닥 재: 강화마루
·난방형태: 기름·나무·연탄보일러를 하나로 연결 
·식수공급: 상수도
·창 호 재: 시스템 창호(미국식)
·설     계: 두리건축사  
·시    공: 오색나무집  011-9915-2195  
http://cafe.naver.com/fivecolortree

 
거실창과 픽스창을 넓게해 빛이 많이 들게 했다

주방은 아일랜드 식탁을 들이고, 다용도실과 외부로 연결되는 문을 달아 편리함을 강조했다.

노부모를 위해 현관과 방, 화장실을 한데 모아 이동을 편리하게 한 구조다. 
 
어렵고 힘들지만 시골이 좋아
구미공단에서 기술자로 부족함 없는 삶을 살던 전석한 씨. 어려서부터 땅을 일구며 흙과 어우러진 삶에 익숙해서인지 도심에서의 생활이 답답했다고 한다. 또한, 은퇴라고 하는 정해진 기한 속에서 불안하게 살아야 하는 삶도 마음을 무겁게 했다고 한다. 오랜 도시 생활로 손에선 농사의 흔적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누구보다 농사가 힘들다는 것을 그는 잘 안다. 매년 귀농·귀촌 인구가 늘다 보니 2012년엔 귀농 인구가 1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넘치는 정보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뒤따라도 귀농에 안착하는 비율은 기대치를 밑도는 추세다.
 
“시골에서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살면서 농사를 도왔어요. 그런데도 막상 귀농하려니 쉽지 않더라고요. 자금을 여유 있게 가지고 시작한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농사와 관련한 자료를 모으고 예천군에서 진행하는 ‘귀농인 양성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면서 3년간 준비했죠.”
 
전석한 씨는 귀농 준비를 마치고 2009년 예천읍으로 이사해 고향 인근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올해 5년 차인 그의 손에선 이제 제법 농사꾼의 태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소출도 안정기에 들어섰다. ‘귀농은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강조하는 전석한 씨는 어려움을 견디는 정신력과 열정, 근면을 귀농의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농사로 자리 잡기 위해선 수확으로 벌어들인 수입의 절반 정도를 적어도 5년은 재투자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좋은 품종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도 해야 하죠.”
 
농사는 ‘흘린 땀만큼 거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땀의 무게와 수확의 기쁨이 비례하는 일이다. 작은 규모로 시작한 농사는 현재 오미자 약 8250㎡(2500평), 감 6600㎡(2000평), 표고버섯 비닐하우스 11개 동으로 늘어났다. 그동안 거의 모든 일을 혼자 이겨내며 거둔 결과라는 것을 그는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줬다.

 
2층 방. 천장에 픽스창을 내 자연광을 들이고 밤하늘을 감상하게 했다.

1층 방. 드레스 룸과 화장실을 분리해 동선이 겹치지 않게 했다

덱에 외부와 통하는 계단을 만들었다.

창을 넓고 많이 내 등을 켜지 않아도 집 안을 밝게 꾸몄다.


옛집은 추억 속으로
2013년 7월에 완공한 집엔 현재 88세와 79세인 노부모만 거주한다. 자녀들의 교육 문제로 건축주 가족이 예천읍에서 거주하기 때문이다. 집은 남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3년 뒤에 부모와 함께 살 예정으로 지었고, 건축을 서둔 이유는 노부모가 하루라도 더 쾌적하고 편리한 생활을 누리도록 하는 바람으로 진행했다. 집은 건축주가 나고 자란 옛집을 헐고 신축했다. 옛집에 얽힌 약 50년의 세월은 추억으로만 남았다.
 
부모 명의의 집을 신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나 예기치 못한 복병이 발목을 잡았다. 20여 년 전 고향에 개발 바람이 불면서 속칭 ‘떳따방’에 의해 많은 땅이 외지인에 팔렸고, 이때 그의 부모도 땅을 팔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신축이 불가능하게 돼 전석한 씨가 서울에 거주하는 소유권자를 찾아나섰다.
 
“땅 주인을 찾는 게 쉽지 않았어요. 어렵게 땅 주인을 만나서 집을 지으려는 사연을 들려줬어요. 사연을 듣고 땅 주인은 제게 소유권을 넘기기로 했죠. 그렇게 부모님의 땅을 되찾았어요.”

 
옛 집터를 마을 길 레벨에 맞춰 2m 정도 성토하고 신축했다. 


건축주는 땅을 되찾고 본격적으로 집 짓기에 나섰다. 여러 곳을 다니다 오색나무집의 모델하우스를 보고 마음에 들어 시공을 맡겼다고 한다. 집터는 뒤로 지나는 마을 길보다 낮아 오색나무집 전대진 대표의 의견에 따라 약 2m 정도 성토하고 집터를 다졌다. 50여 년의 세월이 담긴 옛 집터에 새로운 집을 앉혔다. 예전의 집은 슬레이트 지붕의 단층으로 약 66㎡(20평)이었다. 새로 지은 집은 여유 있게 134.47㎡(40.6평)로 계획했다. 예전 집은 동선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단열도 잘 되지 않았기에, 새집은 해가 오래 들도록 남향에서 약간 서쪽으로 틀었고 동선을 줄이는 데 노력했다. 덱은 주 동선을 따라 양 옆으로 계단을 만들어 어디서도 진입이 쉽게 했다. 1층은 현관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계단실을 중심으로 좌측엔 안방과 거실, 주방 공간을 드리고, 우측으로 노부모 방을 계획했다. 화장실은 공용이 아닌 각 방에 딸린 구조로 계획해 노부모가 사용하기에 편리하도록 구성했다. 주방은 아일랜드 식탁을 들여 공간을 넓게 구성하고, 다용도실과 뒷문, 덱, 외부로 이어지는 동선으로 완성해 외부 활동이 많은 농촌 생활에 어울리도록 계획했다. 2층은 방 1개와 화장실만 두어 게스트 룸으로 이용한다. 2층 덱은 외부로 통하는 계단을 두어 외부와 연결했다. 한편, 천장의 픽스창으로 별을 감상하는 낭만도 즐길 수 있다.
 
“집은 넓지 않지만 화장실을 넉넉하게 방마다 한 개씩 두기를 원했어요. 그리고 거실은 최대한 넓게 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집 안에서 별을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어요.”
 
귀농, 귀촌, 귀향. 시골로 향하는 목적은 다르지만, 이를 계획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흙에 대한 향수이다. 건축주 전석한 씨의 삶을 바라보면서 그가 예전보다 시간을 더 잘게 쪼개며 바쁘게 살지만, 마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한가롭고 여유로워 보였다. 그것은 마음에 그리던 고향에서의 삶을 찾았기에 그런지도 모른다.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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