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동향면 8경景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소반 모양의 천반산을 처음 본 순간 건축주는 "이곳이 아니면 안 되겠다"싶었다. 마치 산이 세상의 모든 오염과 잡념을 차단하는 듯한 이곳에 그는 황토 빛깔 담박한 목조주택을 올렸다. 자동차 정비사업을 하는 그에게서 이제는 기름 냄새보다 산과 물 냄새가 난다.
건축주는 바로 코앞에 하늘을 받들고 있는 천반산의 자태에 단박에 매료돼 전북 진안 성산리에서 인생 2막을 열기로 했다. 천반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소반 같다고 해서 붙여진 산 이름이다. 조선 선조 때 역적으로 몰린 율곡 문하생 정여립鄭汝立(1546~1589)이 은신처로 삼았으며 선견지명으로 임진왜란을 준비해 장졸들을 훈련시키던 곳으로도 알려진다. 성터를 비롯해 장군바위, 마당바위, 뜀바위, 깃대봉 등 정여립에 얽힌 유서 어린 장소가 있고 정여립이 즐겨 마시던 샘물을 먹으면 장군감을 낳는다는 전설로 먼 곳에서도 찾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 유서를 알고 나니 왠지 더 친근해졌어요. 어떤 사람들은 앞산을 보고 갑갑하지 않느냐 하기도 해요. 그런데 나는 자연의 청정한 기운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전원 속이라 생각해요. 산이 곁에 있어 늘 상쾌하고 산에 나무들이 우리 집 정원수나 마찬가지죠. 비록 산의 한쪽 면만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반대편도 내 머릿속에는 그려져요." 대전에서 아파트 생활을 하는 안철웅(55세) 씨는 나이 듦에 따라 어릴적 느껴 본 시골의 맛이 그리워 전원생활이 간절해졌다. 7, 8년 전 '전원으로 가리라'는 마음을 먹었으나 아이들 뒷바라지에 한 해 두 해 미루던 차였다. 그러다 5년 전 산과 물이 있는 인근 대청댐부터 시작해 부지를 알아봤는데 천반산을 마주한 이곳을 보고 나서 더 이상 다른 곳을 찾아볼 필요가 없었다. 온전히 자연을 누릴 수 있고 부지 가격도 저렴했다. 나들목에서 한갓진 도로를 타고 얼마간 더 달려야 하지만 이 정도의 자연을 누리려면 그 정도 수고쯤이야 안 씨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집에서 차로 1시간 넘게 걸려 아주 만만한 거리는 아니지만 자동차 정비로 오랫동안 탁한 공기를 많이 마셨더니 여기가 보약과도 같아요. 그리고 경치는 한 번 잃으면 못 찾잖아요." 자신이 감탄한 천반산 경치를 후대에도 고스란히 전해주기 위해 안 씨는 이곳 자연을 지킬 참이다. 산자락 발아래로는 무주구천동 구천 굽이의 맑은 계곡에서 흘려보내는 시냇물이 졸졸 흐른다. 여름밤에는 다슬기가 서식하는 청정한 곳에서만 산다는 반딧불이 찬란한 빛의 무리로 아름다운 정경을 이룬다. 제아무리 형형색색이라도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도시의 밤과는 비교가 안된다.
포근한 목조주택에 건강한 황토방을 산을 바라보며 경사지를 닦아 올린 주택은 멀리서 언뜻 보면 황토집 같다. 외벽 마감재가 모두 황토색이다. 목재 장식을 해 자연미를 표현하고 마감재로 황토색 바름재를 적용했다. 자연과 수수하게 어우러지는 빛깔이다. 애초 건강에 좋은 황토집을 지을 계획이었던 안 씨의 취향을 외벽에 풀어냈다. 또한 황토집을 짓지 않은 아쉬움을 3.3평 규모의 구들방을 놓음으로써 달랬다. 황토집 시공업체와 시공 계약까지 한 상태였으나 미국에서 3년간 살다 온 친구가 경량 목조주택을 추천하고 친구도 이웃으로 들어올 계획이었기에 목조주택을 짓게 된 것. "겨울에 보온 하나는 끝내줘요"라고 안 씨는 말한다. 벽에 부착된 난방온도 조절기를 보니 꽃샘추위가 한창인 날 현재 실내온도가 25도다. 지난밤에 보일러를 가동하고 꺼 둔 상태인데도 집 전면 남측으로 풍부하게 들어오는 채광 덕분에 외투를 입고 있으면 덥게 느껴질 정도다. 구들방은 황토벽돌을 쌓고 바닥은 구들을 놓은 후 30~40㎝ 두께 구들장을 깔고 한지 장판 마감했다. 입주 후 불을 꽤 땠는지 벌써 아랫목이 꺼멓다. 한 번에 장작 4~5개로 때고 나면 온기가 3일 정도 간다고. 안 씨의 아내는 처음에는 전원주택을 못 마땅해 했는데 남편 따라 주말마다 오다 보니 이제는 먼저 "진안에 언제 가요?"하고 내려오는 날을 기다린단다. "습관이 됐나 봐요. 처음엔 전라도 진안이라 해서 괜히 멀게만 느껴졌는데 자꾸 오다 보니 공기도 좋고 재밌네요." 말이 주말주택이지 안 씨는 직장 출퇴근으로 매일은 오지 못하고 이틀에 한 번 꼴로 이곳에 꼭 들른다. 정리해야 할 마당일이 많기에 아직은 누리기보다 노동을 더 많이 한다. 기단을 높여 집을 올린 덕분에 덱 하부에 생긴 공간을 창고로 사용할 요량으로 요즘 그곳을 정리 중이다. 부부가 손수 만들었다는 원목 원두막 옆으로는 한창 작업 중인 자재와 도구들이 어질러져 있다. 마당에 심겨진 몇 그루의 나무는 집이 지어지기 전부터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안 씨 부부는 부지 마련 후 이곳에 매실나무를 심고 텃밭을 가꾸며 주말농장으로 사용했다. 집을 올리느라 하는 수 없이 뿌리를 몇 차례 옮긴 나무한테는 미안할 따름이다. 꿋꿋한 천반산의 기운으로 나무들도 생기를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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