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에 집들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다. 울타리 치지 않아도, 대문을 달지 않아도 걱정 없는 곳이다. 닭을 풀어 놓아도 놀러 나갔다 잠시 후 집으로 돌아온다 아내는 아랫집에 빈대떡 먹으러 내려갔다가 함흥차사다. 남편 왈曰, "푹 빠져 있는 모양이구려…."그렇게 시골 가기 싫다던 그 아내가 맞나 싶다.
은퇴 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강원도 양구에 전원주택을 짓고 아내와 함께 심플 라이프에 푹 빠져 있는 유종재(68세) 씨는 춘천에 나갔다가 분재용 물사리를 사 와서 앞마당에 심는 중이다. 아내는 아랫집에서 빈대떡 먹으러 오라는 소리에 내려갔다 함흥차사다. 젊을 때부터 전원을 동경하던유 씨는 은퇴를 맞으면서 본격적으로 전원 행을 계획했다. 그런데 아내가 결사반대하고 맞섰다. 한사코 도시가 좋다던 아내를 구슬리면서 합의를 끌어내는 데 장장 6, 7년의 세월이 걸렸다. "틈만 나면 설득했지요. 나중에는 아내도 나이 들어가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사는 게 나쁘지 않겠다 싶어 호응해줬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내가 더 전원생활에 만족한다. 원예에 취미가 있는 아내는 막상 전원에 들어와 자연을 보니, 기대 이상으로 그 재미가 쏠쏠하단다. 전원주택지를 잘 택했고 이웃들을 잘 만난 덕분이기도한다. "우리처럼 도시에서 들어와 집 지은 이웃들이라 문화가 비슷하고 연령도 비슷해 어울려 지내기에 재밌어요.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몰라요." 서울에서 양구는 한결 가까워졌다. 춘천과 양구를 잇는 5.1㎞ 배후령터널(국내 최장)이 3월 30일 개통됐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춘천과 양구를 잇는 유일한 도로가 30㎞ 정도의 굴곡이 심한 산간 도로라 꽤불편했다. 접근의 불리함으로 양구가 더욱 멀게 느껴진 점이 있었다. 실제로 양구군에 따르면 배후령터널 개통 후 관광객 수가 늘었고 양구 입주 예정 기업체도 늘고 있는 분위기라고 한다.
시공자를 믿어야 좋은 집이 나온다 양구 주택은 지난해 11월 착공해 겨울 공사를 했다. 겨울에 건축공사를 할 경우, 땅이 얼고 시멘트 등재료가 언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저물어 하루 작업 시간이 단축된다, 추위로 작업 능률이 떨어진다는 등 불리한 점이 있다. 유 씨도 이런 점이 우려돼 올봄에 착공하려 했으나 서울 아파트를 구입하겠다는 임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겨울 공사를 단행했다. 완공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건축주사정을 보고 시공업체는 해 진 후에도 주변을 환하게 밝혀 놓고 공사하는 배려를 보였다. "봄부터 아파트 팔 계획을 하고 부동산시장을 살폈는데 사겠다는 사람을 찾는 게 어렵겠더라고요. 그래서 원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지요. 당장 살 집을 구해 놓지 않은 상태라 공사를 서둘러 진행할 수밖에 없었어요."유 씨는 건축이 진행되는 초반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서울에서 양구로 달려와 현장을 살피다 나중에는 아예 시공사 사무실에 기거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배후령터널이 안 뚫려 산길을 달리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여행 차 올 때는 재밌었는데 어쩔 수 없이, 그것도 매주 오다 보니힘들더라고요. 기름 값도 만만치 않고요. 그래서 아예 여기서 지내며집이 올라가는 걸 봤지요. 불편했지만 시공사하고 친해지고 여기에 애정도 생겨 결국 집을 잘 지은 결과를 얻은 것 같아요." 유 씨의 전원 행은 오래 전부터 꿈꿔온 것이나 전원주택이나 시공업체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했다. 막막하던 차 종종 드라이브 여행을오던 양구에 토지 분양 광고를 보고 이곳 부지를 마련했고 같은 마을에 지은 집을 통해 시공업체를 소개받았다. 마을 사람이 소개하는 업체니 자연히 믿음이 갔다. 유 씨는"믿음 가는 업체를 잘 만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더러 업체를 믿지 못해 직영 공사 하는 경우도 봤어요. 그런데 공사과 정을 손수 관리하며 공종별로 인력을 구하고 일일이 신경 쓰는 모습이힘들어 보였어요. 인력 공급이 순조롭지 않아 공사를 쉬는 날도 생기게되고. 따지고 보면 비용도 더 드는 것 같아요." 그런 데 비해 전문 시공업체에 맡겼더니 토목공사부터 건축 마무리까지 연계된 업체 혹은 인력과 일정을 조율하며 공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함께 작업한 경험이 다분한 팀원들이라 협업도 순조로웠다.
효율 높은 공간구성 멀리 대암산과 그 앞으로 비봉산을 바라보는 배산임수형 터에 앉혀진유종재 씨의 복층 경량 목조주택은 25평이 조금 넘는 아담한 주택이다. 면적을 놓고도 아내와 실강이 벌였다. 아내는 30평 이상, 유 씨는 25평이하를 주장했다. "우리는'아파트 평수 = 경제력과 성공'에 젖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큰 평수 아파트로 옮기는 것은 로망이기까지 하고요. 그런데 전원주택은 달라요. 은퇴 후 수입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보니 경비가 적게 드는집이 최우선이지요. 집이 크면 자연히 관리비도 더 들어가니, 나는 작은 집을 고집했어요." 유 씨의 의견을 존중해 건물은 26평으로 지어졌고 복층으로 설계해 공간을 수직으로 구획함으로써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수납 등 여유 공간을 원하던 아내를 위해서 시공사는 2층에 다락을 넣었다. 시공을 담당한 미가건축 김정호 대표는"전원주택을 신축하면서 주부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평수가 작을 경우 다용도실이나 수납공간이 적어 불편하다는 점이에요. 그러나 다락이나 계단실 아래 자투리 공간, 혹은 칸막이벽 속을 잘 활용하면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그점이 아파트와 다른 전원주택 공간 활용의 매력이지요"라고 설명한다. 양구 주택은 집을 아담하게 올린 대신 마당을 넉넉하게 사용하고 있다.
280평 부지의 경사를 따라 세 개의 단을 만든 부지는 전망을 고려해 맨 꼭대기에 건물을 올리고 맨 아래에 100평 규모의 텃밭을 일궜다. 농사에 초보인 유 씨부부는 이웃들에게 물어가며 고구마 감자 고추 들을 심었는데 줄을 맞춰 초록을 머금은 농작물들이 제대로다. 이곳에는 알람시계가 굳이 필요 없다. 관상용 닭 두 마리를 가져다 놓았더니새벽 4시 반이면 어김없이 운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깨어 마당에 나가 잡초 뽑는게 하루의 시작이다. "씨를 부리면 싹이 나고 열매를 맺어, 의도한 대로 식물이 자라니 참 신기해요. 그걸 보면서 땅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알게 되네요." 아파트에서 키우던 화분 40개 거의 이웃에게 주고 34년간 애지중지 키운 행운목과 연산홍 등 몇 개만 가지고 왔다. 그런데 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연산홍을유 씨는 남들이 버리라고 하는 말을 듣지 않고 마당에 심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초록색새싹이돋아났다." 여기와서새로운걸터득하고있어요. 믿어주면 식물이 기적처럼 잘 산다는 것을요. 말을 들을 줄 아는 것도 아닐 텐데 내마음을 아는지 살아나는 걸 보면 신기해요. 전원에 산다는 것은 감동 그 자체예요."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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