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 시설 부족과 문화생활에의 갈증
도시에서는 운동복 차림으로 편의 시설에 가는 데 별 불편이 없었지만 전원에서는 어디를 가나 거의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또 도시에서는 문밖으로만 나서면 모든 편의 시설이 즐비하지만 전원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꽤 오래 전, 처음으로 미국에 가서 친구네 집에서 묶었을 때의 일이다. 친구는 주 중에 필요한 식료품이나 생활필수품 목록을 꼼꼼히 적어 두었다가 주말에 대형 마켓에 가서 차분히 구입했다. 그것을 보면서 ‘미국 생활이란 것이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다.
우리는 그 때까지만 해도 언제 어디에서나 필요한 물건들을 사는 데에 불편 없이 살았기에 미국 생활을 이해하지 못했다. 필자가 광주시 퇴촌면에 정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전원생활이 미국 생활하고 꼭 닮은꼴이다. 전원에서 생활하면 할수록 미국 생활이 매우 합리적이란 생각이 든다.
첫째는 많은 과소비를 줄일 수 있어 좋고, 둘째는 참을성〔忍耐〕을 기를 수 있어 좋고, 셋째는 준비성을 키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필자가 처음 이곳에 내려왔을 때는 모든 것이 불편함 그 자체였다.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모터가 고장났을 때,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을 때, 안테나를 설치하지 못해 텔레비전을 몇 개월 못 볼 때, 목재를 비롯한 건축자재를 조금만 사려해도 먼 길을 가야만 할 때 등등. 그 불편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도시에서는 전화 한 통화면 만사 오케이였던 일들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지금은 필요로 하는 모든 일을 대부분 직접 처리하고 있다. 전문가처럼 빠르게 잘은 못하더라도 반풍수半風水 노릇은 한다. 그 모두 불편했기에 얻은 산지식이라고 생각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시골에는 주로 토박이들이 모든 걸 자급자족하다시피 하며 살았지만 요즘에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전원주택이 많이 들어선 수도권의 경우 그 변화 속도는 매우 빠르다.
필자가 이곳으로 이주해 왔던 12년 전에는 농협에서 운영하는 아주 조그마한 슈퍼마켓이 하나 있었다. 아침에는 늦게 열고 저녁에는 공무원 일과 시간에 맞추어 문을 닫아서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개인이 운영하는 딱 한 곳뿐인 구멍가게를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잘 열리지 않는 미닫이 유리문을 여느라고 얼마나 자주 손톱을 다쳤는지! 그런데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산 과자를 도시 아이들은 불량식품이라며 아예 먹지도 않았다. 그랬던 일들이 아직도 뇌리를 스치며 쓴웃음을 짓게 한다.
12년간의 세월, 그 수많은 변화를 어찌 글로 다 표현하랴! 그만큼 세월이란 수레바퀴는 빨리 돌아가고 있다. 시간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지만 요즘은 옛날과 비교하면 도무지 분간조차 못할 정도로 빠르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이젠 옛이야기다. ‘1년에도 강산은 변할 수 있다’로 바꿔 써야 하겠다. 과연 12년 후 이곳은 또 얼마나 변해 있을까? 우리는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아마도 많은 변화의 서광曙光이 보이지 않겠는가! 밤의 문화를 중요시 여기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밤 9시만 조금 넘어도 암흑천지暗黑天地로 바뀌는 컴컴한 시골이 마음에 들 리 없다. 도시 같으면 한창 웃고 떠들고 마시면서 나름대로 젊음을 발산할 시간대인데……. 그러니 밤에는 더욱 갈 곳 없는 현재의 전원생활에 불만을 갖기 마련이다. 영화나 연극 관람은 물론이요, 체육 시설도 부족하다. 돈을 들여서 하는 운동이야말로 진정한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러한 공간조차 마련해 주지 못할 만큼 지금의 전원은 취약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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