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없는 땅은 땅이 아니다

길이 없는 땅은〔盲地〕 땅이 아니다. 여기에서의 길은 지적도地籍圖상의 도로를 뜻한다. 축척자로 재어 4미터가 안 되는 지적도상의 길은 일단 의심하고 검토해야 할 여지가 있다.
전원생활을 시작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길 문제이다. 또한 가장 많은 분쟁 소지를 지니기에 송사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길 문제만큼은 몇 번이고 되풀이 강조해도 모자람이 있다고 강조한다.
현재 버젓이 쓰고 있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허가를 얻으려면 그 도로의 소유권자에게 ‘영구사용승낙서’란 것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땅을 사서 내가 쓸 도로로 편입시킨다는 것과 다름없는데 부르는 게 값일 수가 있다. 또한 지적도상에 4미터가 되는 도로가 엄연히 있는데 그동안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주변의 밭이나 논으로 깎아 먹혀 아주 좁은 논두렁이나 밭두렁 정도의 길만 남은 경우도 있다. 이때는 원래 지적도상의 길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살펴보자. 현재 4미터가 안 되는 도로라 할지라도 그 도로를 사용하는 사람이 사는 주택이 있고, 도로가 포장되어 있다면 안심해도 좋다. 그런 길을 ‘현황도로現況道路’라 하는데 인허가를 득하거나 사용하는 데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가 있다. 서울의 A씨는 2차선 도로에서도 몇 미터밖에 안 떨어졌고 차량도 진입할 수 있는 도로가 지적도상에 있어서 땅을 구입했다. 그러나 그 지적도상에 있는 도로가 허가 조건에서 3평 정도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허가를 얻지 못하는 딱한 사정에 처했다. 물에 빠진 놈 더 밀어 넣는 세상이 된 걸까! 그 3평의 지주地主가 2000만 원을 요구해 왔다. 우여곡절 끝에 1200만 원으로 합의하여 겨우 허가를 얻어 지금은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아직도 그때 얘기만 나오면 머리를 설레설레 흔든다.
결국 시골의 하잘것없는 땅 1평을 400만 원씩이나 주고 산 셈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 도로의 소유주는 집을 짓겠다는 사람의 목줄을 쥐고 있는 형상이기에 요구하는 대로 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요즘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는 ‘알박기’가 된 형태라고나 할까!
그러므로 기존 도로가 있으니 별 문제가 없을 것이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도로인지 또한 도로로 허가를 득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지를 면밀히 따져 본 후 계약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부득이 도로가 없는 땅을 계약해야 하는 처지라면, ‘진입로에 대해서는 매도인이 책임을 지고 잔금 시까지 해결한다’는 단서를 달아 계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매도인이 그런 조건을 들어줄 수 없다고 하면 제아무리 마음에 드는 땅일지라도 미련 없이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한마디 더 부언하자면, 현재는 길이 없어도 길을 낼 확신이 선다면 싸게 구입하는 것도 재테크를 잘 하는 방법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맹지는 그만큼 가격 면에서 싸기에 도로만 낼 수 있다면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 볼까 한다. 도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기 위해서…
도시에서 내려온 J여사는 배산임수형의 아주 예쁜 집 한 채를 구입했다. 구입 당시 지적도상에 도로는 없었지만 엄연히 허가 난 주택이고, 10여 년이나 사용하던 도로가 있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런 도로를 현황도로라고 부른다.- 물론 ‘포장이 된 길이냐, 아니냐’를 많이 따지기는 한다. 이 집은 비포장이지만 그 좌측에는 경계를 뜻하는 하얀 담장이, 우측 밭에는 쥐똥나무 경계목境界木이 있어 의심할 여지없는 도로였다.
그런데 잔금을 치르고 이사 계획을 세우는데, 난데없이 하얀 담장을 한 앞집에서 “자기네 땅의 경계측량이 잘못됐다”며 현재 사용하는 길로 담장을 내어 쳤다. 그것도 실제로는 50센티미터 차이였는데 약 70센티미터나 더 많이…….
J여사가 이사를 할 수 없음은 기정사실이었다. 결국 허가가 난 도로는 우측 편으로 50센티미터 이동을 해야 하는데 그 사이에 땅주인은 바뀌었고, 10여 년이나 지난 일이라 그 토지에는 쥐똥나무 경계목이 많이 자라서 마음대로 길을 넓힐 수도 없는 처지였다. 더군다나 그 토지 소유자는 구입할 당시에 도로 부분으로 공제를 받은 금액보다 훨씬 많은 부분의 땅을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허가 난 도로라 하더라도 남의 경계목을 뽑아 버리고 길을 만들 수도 없는 일이라서 지금은 법에 호소 중이다. 벌써 9개월이 지나고 있는 일인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는가 보다. “쓰던 길을 막으면 삼대三代가 망한다”는 옛말을 여기 두 집의 나이든 어른들은 들어보지도 못했나 보다. 앞으로 살아봐야 10년이나 살까한 고령인데도 무슨 욕심이 그리도 많은지… 정말 한심스런 양반들이다.
이렇듯 전원주택을 구입하거나 짓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도로라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하기 바란다.

-월간 전원주택라이프에 연재했던 글입니다-